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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수선의무, 임대인은 어디까지 고쳐줘야 하나? 범위·특약·비용 총정리

“세입자가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샌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계약서에 건물 수리는 임차인이 한다고 분명히 적어두었는데, 그래도 제가 고쳐야 하는 건가요?”

상가를 세놓고 나면 이런 연락을 받는 날이 옵니다. 계약할 때는 아무도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보증금과 월세를 정하고 기간을 맞추는 데 시간을 쓰다 보면, 건물이 고장 났을 때 누가 고치는지는 문구 한 줄로 지나가기 쉽습니다.

그 한 줄이 나중에 문제가 됩니다. 임대인은 계약서에 적어두었으니 끝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법원은 그 문구를 임대인이 기대하는 만큼 넓게 읽지 않습니다.

나갈 때 원상복구를 두고 다투는 문제는 6편(상가 원상복구)에서 다뤘습니다. 이번 글은 시점을 앞으로 당깁니다. 계약이 살아 있는 동안 건물이 고장 났을 때, 누가 고치고 누가 비용을 대는가입니다.

💡 이 글의 핵심

임대인은 계약이 이어지는 동안 임차인이 정해진 목적대로 쓸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줄 의무를 집니다. 다만 모든 고장이 대상은 아닙니다. 임차인이 큰 비용 없이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것이라면 임대인의 몫이 아닙니다. 그리고 계약서에 수리를 임차인이 맡기로 적었더라도,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어두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큰 수선까지 넘어가지는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 임대인이 지는 의무는 어디까지인가

임대인의 의무는 건물을 넘겨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계약이 이어지는 동안 그 사용과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해주어야 합니다(민법 제623조). 이것을 수선의무라고 부릅니다. 건물이 고장 났을 때 고쳐줄 책임을 뜻합니다. 여기서 사용과 수익이란 임차인이 그 건물을 쓰고 그것으로 수익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조문이 정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느 정도 고장부터 임대인의 몫인지는 한 줄에 담겨 있지 않아, 그 빈칸을 판례가 채웁니다.

먼저 짚어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의무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아니라 민법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환산보증금을 넘는 상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환산보증금은 보증금에 월세를 환산해 더한 금액으로, 이 금액에 따라 상임법이 적용되는 조문이 달라집니다. 상임법 적용 목록에 빠져 있어서 민법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민법의 영역이었다는 뜻입니다. 환산보증금이 무엇이고 왜 갈림길이 되는지는 7편(상가 임대차 계약서)에서 정리했습니다.

📌 어느 정도 고장부터 임대인의 몫인가

기준은 1994년 대법원 판결에서 나왔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대법원 1994. 12. 9. 선고 94다34692, 34708 판결). 두 갈래로 갈립니다.

임차인이 별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것이어서 사용과 수익을 방해할 정도가 아니라면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고치지 않으면 임차인이 계약에서 정한 목적에 따라 쓸 수 없는 상태가 될 정도라면 임대인이 그 의무를 집니다.

고장의 정도임대인의 수선의무
임차인이 별 비용 없이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것지지 않습니다
고치지 않으면 계약에서 정한 목적대로 쓸 수 없게 되는 것집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말이 계약에서 정한 목적이라는 대목입니다. 같은 건물이라도 무엇을 하기로 하고 빌려주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가구전시장으로 쓰기로 하고 빌려준 건물 바닥에 결로가 생긴 사건이 있었습니다. 결로는 공기 중의 물기가 차가운 표면에 물방울로 맺히는 현상입니다. 대법원은 그 건물이 일반적인 용도로 쓰는 데는 하자, 곧 결함이 없다는 이유로 임차인의 청구를 물리친 원심 판결을 파기했습니다(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0다89876 판결). 원심은 대법원 아래 단계의 법원이 내린 판결을 말하고, 파기는 대법원이 그 판단을 잘못되었다고 보아 취소하고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임대인이 가구전시장으로 쓸 것을 알고 빌려주었다면 그 용도로 쓸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주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지는 고장의 정도를 두 갈래로 나눈 도표
고장의 정도가 기준입니다. 사소한 것이냐, 계약에서 정한 목적대로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냐로 갈립니다.

📌 수리는 임차인이 한다고 적었다면

계약서에 이런 문구를 넣어두는 임대인이 있습니다. 이 문구가 아무 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수선의무는 특약으로 면제하거나 임차인의 부담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특약은 기본 조항 외에 당사자가 따로 합의해 계약서에 적어두는 내용을 말합니다.

다만 여기에 한계가 붙습니다. 특약에서 수선의무의 범위를 명시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넘어가는 것은 통상 생길 수 있는 파손의 수선 등 소규모의 수선에 한합니다. 대파손의 수리, 건물의 주요 구성부분에 대한 대수선,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와 같은 대규모의 수선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고 여전히 임대인이 부담합니다. 쉽게 말해 건물의 뼈대나 기본 설비를 손봐야 하는 큰 공사입니다.

특약에 범위를 적지 않은 경우누구의 몫인가
통상 생길 수 있는 파손의 수선 등 소규모의 수선임차인에게 넘어갑니다
대파손의 수리, 주요 구성부분의 대수선,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임대인이 그대로 집니다

⚖️ 판례

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7다91336 판결
건물수리는 입주자가 한다는 문구를 월세계약서에 적어두었더라도, 그것만으로 임차인이 어느 범위까지 맡기로 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사건에서는 물이 새는 현상이 점포 곳곳에서 되풀이되어 전면적인 수리가 요구되었고 그 비용도 거액에 이르렀으므로, 대규모 수선이 필요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런 문구를 근거로 임대인이 책임을 벗고 임차인이 이를 떠안게 되지는 않는다.

임대인이 계약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넘기려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는 것입니다. 건물 수리는 임차인이 한다는 식으로 뭉뚱그린 문구는 큰 고장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 주의

범위를 아무리 촘촘히 적어도 넘어가지 않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빌린 건물의 일부가 임차인의 잘못 없이 없어지거나 그 밖의 사유로 쓸 수 없게 된 때에는, 그 부분의 비율만큼 차임을 깎아 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627조 제1항). 남은 부분만으로 빌린 목적을 이룰 수 없다면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습니다(같은 조 제2항). 이 조문에 위반하는 약정으로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습니다(민법 제652조). 특약을 세밀하게 쓰는 것과 법이 정한 선을 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수선의무 면제 특약에 범위를 적지 않은 경우 임차인과 임대인에게 각각 남는 수선의 범위를 정리한 도표
좌측은 특약으로 넘어가고, 우측은 특약이 있어도 임대인에게 남습니다.

📌 임대인의 몫이 아닌 고장도 있습니다

수선의무가 무한정 넓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임대차의 목적에 따른 용도대로 임차인이 목적물, 곧 빌려준 건물을 쓰게 하는 데 필요한 범위에서 인정됩니다. 그 바깥의 위험까지 미리 막아둘 의무는 아닙니다.

판단은 한 가지 잣대로 하지 않습니다. 목적물의 종류와 용도, 파손이나 장해가 생긴 규모와 부위, 그로 인해 사용과 수익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 수선이 쉬운지와 드는 비용, 계약 당시 목적물의 상태와 차임의 액수 등 여러 사정을 함께 참작해 사회통념, 곧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준에 따라 판단합니다.

⚖️ 판례

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107405 판결
공장에 인접한 임야가 집중호우로 무너지면서 밀려 내려온 토사가 공장 벽체를 부수고 안까지 들어온 사건이다. 임대인이 지는 수선의무의 범위에, 집중호우가 오면 임야가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고 공장에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방호조치를 취할 의무까지 들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임대인에게 임야에 맞닿은 쪽에 담장을 세우거나 벽체를 견고한 재질로 시공할 의무가 있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같은 물난리라도 결과가 갈립니다. 앞의 결로 사건은 건물 자체의 구조에서 비롯된 하자였고, 이 사건은 건물 바깥의 자연재해였습니다. 임대인이 유지해야 하는 것은 그 건물을 약속한 용도로 쓸 수 있는 상태이지, 건물 밖의 모든 위험을 미리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 수선하러 들어가는데 임차인이 막는다면

임차인은 이를 거절하지 못합니다. 임대인이 임대물의 보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때가 그렇습니다(민법 제624조).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공사를 막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여기에도 예외와 대가가 함께 붙습니다.

첫째, 임대인이 임차인의 의사에 반하여 보존행위를 하는 경우에 임차인이 이로 인하여 임차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때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625조). 공사 규모가 커서 그 기간 동안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라면 임차인이 계약을 끝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공사 기간 동안의 차임입니다.

⚖️ 판례

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4다65724 판결
목적물을 쓰게 해줄 임대인의 의무와 차임을 낼 임차인의 의무는 서로 맞물려 있다. 임대인이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용과 수익에 부분적으로 지장이 있는 상태라면, 임차인은 그 지장의 한도 안에서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사용과 수익에 지장이 생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충전소 임대차 사건이었습니다. 임대인이 안전에 문제가 있는 건물 일부를 철거하는 등 수선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임차인이 사무실 동과 세차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대법원은 그에 상응하는 차임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아 원심 판결을 파기했습니다.

이 사건에는 특약도 하나 있었습니다. 시설물을 설치하거나 철거하거나 변경해서 영업상 손해와 손실을 입더라도 배상이나 보상을 청구하지 않기로 한 약정이었습니다. 대법원은 그 약정이 영업상의 손해에 관한 것일 뿐, 목적물을 쓰지 못한 데 따라 차임 지급을 거절할 권리까지 없애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수선 공사 자체는 임차인이 막을 수 없지만, 그 기간에 임차인이 못 쓰게 된 만큼의 차임은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공사 일정을 잡을 때 이 부분을 미리 협의해두는 편이 낫습니다.

임대인이 수선 공사를 할 때 적용되는 세 단계를 정리한 도표
공사 자체는 막을 수 없지만 그 대가가 따릅니다. 3번은 조문이 아니라 판례입니다.

📌 임차인이 먼저 고쳤다면 비용을 물어줘야 하나

임차인이 청구하면 물어주어야 합니다. 임차인이 임차물의 보존에 관한 필요비를 지출한 때에는 임대인에게 그 상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626조 제1항). 필요비는 목적물을 원래의 상태로 유지하고 보존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말하고, 상환을 청구한다는 것은 그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는 뜻입니다.

임대인이 고쳐야 할 고장을 임차인이 대신 고쳤다면, 그 비용은 결국 임대인에게 돌아옵니다. 수선 요청을 미루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임차인이 지출한 비용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정산되지는 않습니다. 목적물의 가치를 올리는 데 들어간 유익비는 계산 방식도 청구 시점도 달라 16편(상가 인테리어 비용)에서 다룹니다.

📌 임차인이 알리지 않았다면

임차인에게도 의무가 있습니다. 임차물의 수리를 요하는 때에는 지체 없이 임대인에게 이를 통지해야 합니다. 다만 임대인이 이미 이를 안 때에는 통지가 없어도 됩니다(민법 제634조).

문제는 알리지 않은 채 손해가 커진 경우입니다. 임차인이 통지하지 않아 임대인이 수선을 할 수 없었던 범위에서는 임대인이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본 판결이 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6. 20. 선고 2014나13609 판결).

다만 이 대목은 근거의 무게가 앞의 내용과 다릅니다. 이 쟁점을 정면으로 다룬 대법원 판결은 확인되지 않고, 위 판결은 대법원이 아닌 아래 단계 법원의 판단, 곧 하급심입니다. 사안도 다가구주택 임대차였습니다. 그래서 법원이 늘 이렇게 판단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다퉈볼 근거가 있는 영역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실무적으로는 방향이 분명합니다. 고장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가 남아야 하므로, 임차인의 연락은 문자나 메일처럼 기록이 남는 형태로 받아두는 편이 낫습니다.

고장을 알렸는데도 고쳐지지 않아 실제로 손해가 난 경우라면 문제가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고쳐줄 의무와는 별개로 건물의 결함 자체에 붙는 배상책임이 있고, 그 책임은 계약이 없는 사람에게도 미칩니다. 37편(상가 누수 책임)에서 판례와 함께 정리했습니다.

고장 연락을 어떻게 받아 두었는지가 결정적인 자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건물에 불이 난 경우입니다. 임대인이 맡아 관리하는 부분의 결함에서 난 불이라면 임차인에게 배상을 구하기 어렵고, 임차인이 그 결함을 알거나 알 수 있는 처지였는지가 갈림길이 됩니다. 22편(상가 화재)에서 판례와 함께 정리했습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 계약서에 수리는 임차인이 한다고 적었는데 세입자가 큰 공사를 요구합니다. 거절할 수 있나요?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어두지 않았다면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문구로 임차인에게 넘어가는 것은 소규모의 수선까지이고, 건물의 뼈대나 기본 설비를 손봐야 하는 큰 공사는 임대인이 그대로 부담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다만 그 고장이 임차인이 별 비용 없이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것이라면 애초에 수선의무의 대상이 아닙니다.

Q. 수리하는 동안에도 월세를 다 받을 수 있나요?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임차인이 목적물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 지장의 한도 안에서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이 아래 법원의 판단을 뒤집으며 밝힌 법리입니다. 공사 범위와 기간, 그동안 차임을 어떻게 할지를 미리 정해두는 편이 분쟁을 줄입니다.

Q. 수리하러 들어가겠다는데 세입자가 영업에 방해된다며 막습니다.
건물 보존에 필요한 행위라면 임차인이 거절하지 못합니다(민법 제624조). 다만 임차인의 의사에 반해 공사를 진행했고 그로 인해 임차인이 임차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는 임차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625조). 공사 규모가 크다면 일정과 방식을 협의해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 마치며

이 글에서 거듭 나온 것은 계약서에 적힌 수리는 임차인이 한다는 문구입니다. 이 문구는 힘을 갖되, 범위를 적어두지 않으면 소규모 수선까지만 힘을 갖습니다. 큰 고장은 여전히 임대인의 몫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임대인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로 좁혀집니다. 계약 단계에서 넘기려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어두는 것, 그리고 고장 연락을 받으면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미룬 사이에 임차인이 직접 고치면 그 비용은 돌아오고, 못 쓰게 된 기간의 차임은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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